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에 완고한 태도를 보이면서 주요 재건축 단지들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9단지, 노원구 태릉우성, 양천구 목동 9·11단지 등이 줄줄이 고배를 마시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서로 경쟁하듯 '속도전'으로만 재건축을 진행하려고 하던 단지들도 전략 세우기와 수 싸움에 분주한 모습이다.
26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한 하계장미아파트는 오는 8월 1차 정밀 안전진단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안전진단에 필요한 2억3600만원의 97%를 3개월 만에 모았을 정도로 재건축에 대한 주민 열의가 높다. 하지만 주민들은 속도 조절을 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1차 안전진단은 빠르게 진행하되 2차 적정성 검토는 대선 이후로 미루자는 것이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는 예비 안전진단과 민간 용역 업체가 진행하는 1차 정밀 안전진단,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국토안전연구원이 진행하는 2차 적정성 검토로 단계가 나뉜다. 2차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업무를 맡기 때문에 정부 정책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하계장미 재건축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처음에는 속도전에만 집중했는데, 제도와 정책이 시시각각 바뀌고 대선도 1년이 채 남지 않다 보니 다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원구 상계주공6단지 역시 호흡을 가다듬는 모양새다. 이 단지는 지난 4월 1차 정밀 안전진단을 D등급으로 통과하고 2차 진단을 앞두고 있다. 노원구에서 재건축 속도가 가장 빠른 단지지만 연내 2차 적정성 검토를 의뢰하지 않기로 했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안전진단 문턱을 크게 높이며 '재건축 시장의 보릿고개'를 낳았다. 그동안 건축연한 30년이 지나면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던 안전진단 평가 항목에 손댔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정부는 안전진단 평가항목에서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기존 20%에서 50%로 높였다. 여기에 더해 공공기관에 2차 적정성 검토를 받으라는 규정을 신설했다. 주거 환경이 열악해도 붕괴 위험이 있는 단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정비사업의 첫 단계인 안전진단을 통과하기가 어려워졌다.
실제 매일경제가 2018년 이후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국토안전연구원에서 2차 적정성 검토를 받은 단지를 전수조사한 결과 25곳 중 12곳은 안전진단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서울 아파트 단지를 기준으로는 10곳 중 6곳에 달했다. 안전진단 평가항목은 국토교통부 고시에 규정돼 있다. 국회에서 별도 입법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정부 정책 기조만 변해도 분위기가 확 바뀔 수 있다. 구조안전성 가중치는 정권에 따라 변화했다. 2006년 노무현정부에는 50%이던 것이 이명박정부에는 40%, 박근혜정부에서는 20%까지 낮아졌다. 문재인정부 들어 다시 50%까지 높아졌다.
최근 서울시는 구조안전성 비중을 30%로 20%포인트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토부가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재건축 규제 완화가 집값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내진 설계에 대한 내용만 안전진단 평가에 반영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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